한국사 한 장

8. 근대 국가 수립 운동(개항기)

1863 ~ 1910 · 흥선 대원군, 병인·신미양요, 강화도 조약과 개항, 임오군란·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독립 협회,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국권 피탈 과정과 의병·애국 계몽 운동

개요

19세기 중반 조선은 세도 정치와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안팎이 흔들리고 있었다. 1863년부터 1910년까지 47년 동안 조선은 서양 열강과 일본의 압력 속에서 문을 열고, 근대 국가로 나아갈 방향을 두고 격렬하게 다투었다. 이 시기의 흐름은 네 단계로 나누어 보면 정리가 쉽다.

흐름

  • 1863~1876, 흥선 대원군의 집권과 개항: 대원군은 왕권을 세우고 재정을 확충하려고 내정을 개혁했다. 대외적으로는 쇄국을 고수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물리쳤으나,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결국 문을 열었다.
  • 1876~1894, 개화 정책과 갈등: 개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가 나뉘었고, 위정척사 세력은 개항과 서양 문물을 강하게 반대했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은 모두 청과 일본의 개입 속에 실패했다.
  • 1894~1897, 농민 봉기와 개혁: 동학 농민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자 청일 전쟁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이 추진되었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으로 개혁의 주도권은 크게 흔들렸다. 독립 협회는 자주 독립과 입헌 정치를 요구했다.
  • 1897~1910, 대한 제국과 국권 피탈: 대한 제국이 선포되고 광무개혁이 추진되었으나,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의 간섭이 강해졌다.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잃었고, 정미 7조약(1907)으로 군대를 해산당했으며, 1910년 국권을 빼앗겼다. 이에 맞서 의병과 애국 계몽 운동이 펼쳐졌다.

시험에서 보는 축

정치는 대원군의 정책, 개화파와 위정척사 세력의 대립, 갑오·을미개혁과 광무개혁의 차이를 묻는다. 경제는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 상인의 침투와 방곡령, 열강의 이권 침탈(운산 금광, 경인선 철도)을 묻는다. 사회는 동학 농민군, 독립 협회, 의병, 신민회처럼 민중과 시민이 주도한 운동을 묻는다. 문화는 한성순보·독립신문·대한매일신보 같은 근대 언론과 학교 설립을 묻는다.

이 시기 문제는 순서와 주체를 함께 가리는 경우가 많다. 같은 사건이라도 누가 주도했고 누구의 개입으로 끝났는지를 구분해야 판별 문항을 풀 수 있다. 특히 청과 일본이 각각 어느 사건에 어떻게 끼어들었는지를 짝지어 기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연표

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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