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한 장

7. 조선 후기

17세기 ~ 1863 · 광해군 중립 외교, 정묘·병자호란, 예송과 환국, 영조·정조 탕평 정치,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홍경래·임술), 대동법·균역법·영정법, 실학, 서민 문화

개요

조선 후기는 1608년 광해군 즉위부터 1863년 흥선대원군 집권 직전까지, 대략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를 다룬다. 시험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흐름이 시기별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묻는다.

정치에서는 먼저 대외 관계가 바뀌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으나 인조반정(1623)으로 물러났다. 인조반정 뒤 서인이 친명배금 노선을 택하면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1637)을 겪었고, 이후 청과는 군신 관계가 맺어졌다. 효종 때는 청에 대한 굴욕을 씻자는 북벌론이 제기되었다.

국내 정치에서는 붕당 간 대립이 격해졌다. 현종 때 예송을 거쳐 숙종 때 환국이 반복되면서 한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구조가 생겼다. 영조와 정조는 탕평책으로 붕당의 폐단을 줄이려 했으나, 정조 사후에는 외척이 권력을 쥐는 세도 정치가 등장했다.

경제에서는 대동법·영정법·균역법으로 세금 제도를 고치려 했다. 그러나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상평통보가 전국에 유통되면서 상인과 사상(私商)이 성장했다. 반면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농민의 부담은 커졌고, 홍경래의 난(1811)과 임술농민봉기(1862)가 이어졌다.

사회에서는 신분제가 흔들렸다. 납속과 공명첩으로 신분을 얻는 일이 늘었고, 1801년 공노비 해방으로 노비제의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문화에서는 실학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유형원·이익·정약용의 중농학파와 홍대용·박지원·박제가의 북학파가 대표적이다. 서민 문화도 성장해 판소리·탈춤·한글 소설·풍속화·민화가 널리 퍼졌다.

주요 연도: 광해군 즉위·대동법 경기도 시행(1608), 인조반정(1623), 정묘호란(1627), 영정법(1635), 병자호란(1636), 효종 즉위(1649), 기해예송(1659), 상평통보 주조(1678), 경신·기사·갑술환국(1680·1689·1694), 탕평교서(1725), 균역법(1750), 정조 즉위(1776), 신해통공(1791), 공노비 해방(1801), 홍경래의 난(1811), 임술농민봉기(1862), 흥선대원군 집권(1863).

연표

절 목록

절 본문·시험 포인트·연습 문항은 앱에서 봅니다.

용어 44개

정의와 암기 카드는 앱에서 봅니다.

← 조선 전기근대 국가 수립 운동(개항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