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한 장

2. 여러 나라의 성장

기원전 2세기 ~ 3세기 ·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의 정치 체제와 풍습(영고·동맹·무천·계절제, 민며느리제·책화·소도 등)

개요

기원 전후 무렵 한반도 북부와 동해안, 남부에서는 고조선이 무너진 뒤 여러 나라가 자리를 잡았다. 북쪽에는 부여와 고구려, 동쪽 바닷가에는 옥저와 동예, 남쪽에는 삼한(마한·진한·변한)이 있었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이 이들의 정치 체제와 풍습을 기록해 두었고, 시험에서는 이 기록을 근거로 나라를 가리는 문제가 자주 나온다.

흐름 한눈에 보기

이 시기의 나라들은 아직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다. 왕이 있어도 권력은 가(加)·읍군·삼로 같은 지배자들이 나누어 가졌고, 나라 안은 여러 세력이 모인 연맹 형태였다. 부여와 고구려는 사출도나 5부처럼 세력을 나눈 조직을 두었다. 옥저와 동예는 읍락 단위로 흩어져 살았고 큰 왕을 두지 않았다. 삼한은 여러 소국이 연맹을 이룬 대표 사례다.

시험에서 보는 축

정치 축은 '누가 다스렸는가'다. 부여의 가(加)와 고구려의 제가회의, 삼한의 천군과 소도가 여기에 든다. 사회 축은 '어떻게 살았는가'다. 부여의 순장, 고구려의 서옥제,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골장제, 동예의 책화·무천이 그 예다. 경제 축은 특산물과 교역이다. 동예의 단궁·과하마·반어피, 변한의 철이 대표적이다. 문화 축은 제천 행사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5월·10월 계절제를 짝으로 묶어 두면 헷갈리지 않는다.

다음 시대와 잇기

고구려는 2세기 고국천왕 때 왕위 부자 세습과 진대법으로 체제를 다졌고, 3세기에는 위나라의 침입을 받아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었다. 4세기 초에는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축출되며 고구려가 서북 지역으로 넓혀 간다. 이 장에서 익힌 여러 나라의 모습은 다음 시대 삼국의 성장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연표

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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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4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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